A-10 2025 년 6 월 6 일- 2025 년 6 월 12 일 미국 사회 / 특별기획
미시간, 호수 많고 겨울엔 ' 눈 폭탄 ' 퍼붓는 설국
미국은 50 개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다. 미국 각 주는 크기와 규모, 경제력, 인구 등에 있어 웬만한 국가를 능가하는 곳들이 많다.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50 개주의 면면 들을 주별로 소개해 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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메릴랜드 매사추세츠 미시간 미네소타 미시시피
< 22 > 미시간
< 김용일 기자 > 미시간주의 미시간이라는 이름은‘ 많은 물’ 을 뜻하는 인디언 말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정설이다. 실제로 미시간은 온통 물 에 둘러 쌓여 있다. 오대호 가운데 4 개의 호수와 연해있다. 넓이가 250,494 km2 로 한반도 보다 10 % 이상 크다. 면적으로는 미국 50 개주 가운데 11 위, 인 구는 아홉번째다. 미시간은 특이하게 두덩 어리로 나뉘어져 있다. 위스컨신 쪽과 접 한 반도와 벙어리 장갑 모양으로 불그러 져 나온 반도가 그것이다. 두반도는 매키 나 대교를 통해 연결된다. 미시간의 태동과 개척은 이웃한 위스컨 신과 비슷한 경로를 밟있다. 1620 년 무렵 프랑스인 브뢸이 위스컨신과 접해 있는 반도 지역을 탐사했다. 10 여년 뒤 또 다른 프랑스 탐험가와 신부 등이 발 을 디딘 후 1668 년 솔 세인트 마리에 미시 간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가 들어섰다. 이 지역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관심사는 포교와 모피무역이었다. 약간의 프랑스인 농장들도 자리를 잡았다. 그러나 선입자 프랑스의 미시간 점유는 오래 가지 못했다. 영국이 캐나다 퀘벡 지 역을 거점 삼아 오대호 연안 지역까지 지 배권을 확장해왔기 때문이다. 결국 1763 년 1 차 파리조약을 통해 영국은 미시간을 포
강사: 이 삭 목사 모퉁이돌 선교회
함한 중북부 지역을 수중에 넣었다. 1774 년 영국은 미시간을 퀘벡주의 일부로 편 입시켜버렸다.
미독립전쟁 중에 미시간은 영국군의 배 후 거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. 영국군은 디트로이트를 포함, 이 지역 일대에 상당 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인디언들을 동 원, 미국인 정착지들을 공격케 했다. 이 가 운데 일부는 멀리 켄터키까지 원정을 하기 도 했다. 본의 아니게 영국에의 부역자( 附 逆者) 역을 맡은 것이다. 1783 년 독립전쟁이 끝나면서 미시간에 대한 통치권은 미국으로 넘어왔다. 영국은 미시간을 포기했지만 가장 주요 돈벌이인 모피 교역 만큼은 명맥을 이으려 했다. 이 를 위해 미시간 일원에 산재한 인디언들 과 긴밀한 관계도 계속 유지, 필요시 미국 의‘ 뒤통수’ 를 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. 영국의 이같은‘ 더블 플레이’ 는 1815 년 미 영전쟁이 끝나면서 종식을 고하게 됐다. 미 시간 지역의 인디언들은 서쪽으로 밀려났 고 미시간은 비로서 미합중국의 일원이 됐 다. 이 무렵까지 미시간은 주변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모피 사냥꾼이나 교역자들 빼 고는 인적이 드문 황량한 수림지대에 불 과했다. 1820 년 인구조사에 기록된 미시간의 인구 수는 고작 7,452 명이었다. 한반도 보다 훨 씬 큰 지역임에도 살고 있는 주민수가 기
2025 년 6 월 15 일( 주일) 오후 2 시 30 분
주님의 교회( 담임목사: 문경두) 703-859-2001 13941 Braddock Rd. Centreville, VA 20122
천명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은, 해당 지역 이 영토나 피통치 대상으로 큰 의미가 없 음을 반증한다. 당시 전쟁에 의해, 그리고 할양 조약에 의해 넓은 땅이 넘겨지고 또 넘겨받았지만, 사실은 황무지에 대한‘ 명 의 변경’ 정도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. 미시간은 그러나 1825 년 이리 운하가 개 통되면서 급속한 성장세에 접어들었다. 동 쪽의 뉴잉글랜드, 뉴욕 등지에서 많은 사 람들이 새로이 미시간에 둥지를 틀었다. 그 결과 1830 년에는 0 만명대로 늘었다. 불 과 10 년 사이에 인구가 10 배로 급증한 것 이다. 미시간은 주변 다른 지역들과 앞서 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1837 년 미국의 26 번 째 주로 편입됐다. 하지만 명색이 정식 주 이긴 했어도 주민수로 따져서는 서울의 일 개 동만한 규모에 불과한, 말 그대로‘ 깡 촌’ 이었다. 미시간은 남북전쟁 중에 북군의 편에 섰 다. 미시간에서 결정적인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북군의 유명한 커스터 장군은 미 시간 기마대를 지휘했었고, 1865 년 5 월 10 일에는 이 기마대가 조지아에서 제퍼슨 데 이비스 남부 대통령을 사로잡아 남북전쟁 의 종지부를 찍는 기여를 하기도 했다. 미시간은 내수면 비율이 40 % 가 넘는다. 다소 과장하자면 미시간주는‘ 땅반 물반’ 이다. 그리고 침엽수림 지대가 끝 없이 펼 쳐진다. 이런 연고로 미시간은 일찍 부터 목재생산량이 많고 가구 산업이 활성화됐 다. 지금의 미시간은 오대호 연안에서 가 장 중공업이 발달한 지역중의 하나로 꼽히 고 있다. 그 반도 남쪽에 자리한 디트로이 트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미국 자동차 제 1 의 생산지다. 포드, GM, 크라이슬러 같은 자동차‘ 빅 3’ 의 본사가 모두 이곳에 있다. 지금은 조 지아, 앨라배마 등지로 자동차 생산 거점 이 분산되고 있지만 디트로이트가 여전히 미국 자동차 산업의 요람임을 부인할 사 람은 없다. 미시간의 이같은 산업 기반은 1,2 차 세계 대전중에 미방위산업에 있어 중추적인 역 할을 담당케 했다. 전투기, 군함 건조, 탱 크, 군용차량 등 막대한 중장비 및 군수 품 생산은 미시간의 중흥과 발전에 큰 기 여를 했다. 미시간은 오대호 연안 지역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눈이 많은 곳이다. 위스컨신 에 접해있는 지역은 특히 더 심한데 핸콕( Hancock) 이라는 마을의 경우 년간 총 강 설량이 5m 가 넘을 때도 있을 정도로 무지 막지하게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.
미시간에는 아랍계 무슬림이 타지역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살고 있다. 2015 년 기준 으로 미시간내 무슬림 인구는 27 만 3 천여명 으로 이는 미시간 인구 전체의 2.75 % 에 달 한다. 이는 미국 전체 평균이 1 % 정도인 것 을 감안하면 상당한 인구 집중이다. 무슬림계 주민들의 미 중서부 지역 이주 는 19 세가 말에서 1920 년대 사이에 본격화 됐다. 그러다가 1960 년대 이후 이스라엘 점 령하의 팔레스타인 지역과 내전 상태의 예
멘에서 벗어나려는 난민들이 연고를 따라 이 지역으로 집중 유입됐다. 무슬림들이 특히 미시간에 많은 이유는 디어본( Dearborn) 에 자리잡은 포드 자동 차 공장이 큰 역할을 했다. 이 공장에 많은 무슬림들이 취업했고, 이들의 가족까지 이 주하게 됨으로써 커다란 무슬림 커뮤니티 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. 이렇게 조성된 미국 최대 규모 무슬림 커뮤니티는 자연 스럽게 미 중부의 구심점이 돼, 다른 국가 출신의 무슬림들도 이 곳에서 둥지를 틀 게 됐다. 일찍이부터 의학과 비즈니스 쪽 에 우월성을 보였던 무슬림들은 전문직 가 운데서도 특히 의료 계통 종사자가 많은 데. 미시간 전체 의사의 15 % 이상, 약사의 10 %, 치과 의사의 7 % 이상이 무슬림이라 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. 또 무슬림들이 운 영하는 사업체가 35000 개가 넘으며, 이는 미시간 전체 스몰비즈니스의 4 % 이상을 차지하는 것과 함께 10 만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.
미시간은 위스컨신, 펜실베이니아 등과 더불어‘ 러스트 벨트’ 로 불리우는 곳이다. 백인 블루 컬러 계층들이 많고 이들 중 상 당수가 자동차 산업이나 기타 중공업 분야 에 종사하고 있다. 이‘ 러스트 벨트’ 지역은 미정치권에서 상 당한 입김을 발휘하고 있다. 전반적으로는 민주당 성향이 높지만 트럼프 전대통령 이 후 스윙 스테이트로 전환돼 미대선의 향방 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. 2016 년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는 저학력, 저소득층 백인 유권자들을 집중 공략, 1992 년 이래 공화당 후보를 외면하던 이곳에서 47.25 % 를 얻어 47.03 % 를 기록한 클린턴 후보를 간발의 차로 제쳤다. 득표율 0.22 % 차라는 것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 500 명 씩의 지지표를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가운데 단 한명이 이탈, 501 표대 499 표로 바뀌었을 때의 차이다. 당시 언론은 트럼프 후보의 승리를‘ 면도 날 차이’ 로 표현했는 데 그럼에도 승자독 식 원칙에 의해 미시간에 배정된 대선 선 거인단 15 표를 독식,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다. 그러나 2020 년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 났다. 바이든이 트럼프를 불과 2.7 % 정도, 대략 15 만표 차이로 눌러버린 것이다. 이처럼 미시간 주민의 표심( 票心) 은 어느 쪽에도 확신을 못 갖게하고 있다. 2024 대선을 앞두고는 이스라엘- 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아랍계 주민들의 반발이 고 조돼 바이든 대통령 진영을 긴장시키고 있다.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을 보 였던 아랍계가 등을 돌릴 경우, 특히 미시 간 같은 스윙 스테이트에서는 한줌의 차 이로도 승부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. 미시간의 간판 대학인 미시간대( University of Michigan) 는‘ 아이비 리그 주 주립대’ 중의 하나로 불리는, 최상위권 명 문 주립대로 꼽히고 있다.